뮤지컬 <레베카>에는 ‘행복을 병 속에 담는 법’이라는 넘버가 있어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된 주인공이 지금 이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감정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부르는 넘버죠. 인간의 머릿속은 참 신기해요. 기쁘고 신나고 행복했던 순간은 쉽게 옅어지지만, 슬프고 괴롭고 힘들었던 순간들은 오래 남잖아요. 사랑도 그래요.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그 사람이 미워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만일,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늘의 영화가 답을 줄 수 있을까요? 겨울 풍경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조엘은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2년간 사귄 후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에 선물을 주기 위해 그가 일하고 있는 서점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반응하고 심지어 조엘 앞에서 다른 남자와 스킨십을 하는데요, 이에 혼란스러운 조엘은 그의 친구들을 찾아가죠. 친구들에게서 클레멘타인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는 시술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말을 전해 듣습니다. 기억을 삭제해 주는 회사 ‘라쿠나’에 찾아간 조엘도 그 시술을 받게 되는데요, 시술이 시작되고 점점 사라지는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들 속에 잊고 있던 사랑을 느끼던 조엘은 삭제를 거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잠들어 버린 조엘은 머릿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하죠. 과연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기억 속에서 없애고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확인하세요!

티끌 하나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영화의 원제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티끌 하나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이란 뜻으로 알렉산더 포프의 시 <Eloisa to Abelard(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의 구절 중 일부를 인용한 거예요. 미셸 공드리 감독은 이 시를 읽고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금지된 사랑을 한 죄로 수녀가 된 엘로이즈와 수도승이 된 아벨라르가 속세를 떠나 점점 잊혀 가는 것을 보고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라는 것을 생각했다고 해요.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는 것이 과연 근본적인 해결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을 통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고통스러운 순간은 사라졌지만, 자신의 결핍과 결함은 남아있기 때문이죠. 서로에 의해 그것들을 채워주고 성장해 나갔던 것들마저 사라져 버리게 되니 더욱 혼란스러워하는 두 주인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지우고 싶은 기억마저도 자신을 성장하게 하며 치유해 준다는 것이죠.

기억은 삭제가 가능할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죠. 기사에 따르면 기억은 부호화 > 저장 > 공고화 및 재공고화 > 인출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고 해요. 그러니까, 기억의 의식 또는 무의식적 재생은 재공고화 과정을 통해서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공고화를 억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건데요, 고통스럽거나 괴로운 기억은 감정적 변화와 연결되어 있대요. 특히, 뇌에서 기저외측편도체에서 노르아드레날린성 신경계가 활성화할 때 재공고화되며 이는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과 연관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해요. 만일 과학이 더 발전해서 뇌 부위별 미세 활동을 쉽게 측정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영화 속 조엘처럼 전자기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특정 기억의 인출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대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약물로 억제하는 방식이 제일 현실적이라고 하네요. 만일 님에게 기억을 삭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41559?lfrom=kakao

반대가 끌리는 이유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어요. 소심하고 회피형의 성격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조엘과 충동적인 성격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클레멘타인이에요. 둘은 자신에게서 볼 수 없는 서로의 모습에 이끌려 연애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둘은 결국 권태기가 오고야 마는데요. 사랑에 빠졌던 이유가 이젠 사랑하지 않은 이유가 되어버리자, 클레멘타인은 라쿠나를 찾아가 조엘과의 추억을 기억에서 지웁니다. 늘 계획적이었던 조엘이 클레멘타인과 강제로 헤어지게 된 이후로부터 클레멘타인과 같은 성격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라쿠나를 찾아가 충동적으로 기억을 지우고, 기억이 다 지워지기 직전 이제 어떻게 하냐는 클레멘타인에 이 순간을 즐기라고 대답하며, 기억을 모두 지운 아침에 출근하다 몬톡으로 향하는 기차를 탑니다. 조엘에게 클레멘타인은 이미 너무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죠. 조엘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몬톡에서 클레멘타인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또 한 번 서로에게 이끌려 만나게 됩니다. 기억은 지워졌지만 사랑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던 거예요. 서로의 끝을 보고 나서도 담담하게 마주 볼 수 있었던 이유도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Oh My Darling, Clementine
여자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은 미국 서부의 민요로 이 노래를 모르는 미국인은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다수 아는 유명한 노래예요. 영화 초반부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만나 서로 이름을 소개했을 때 조엘이 이 노래를 모른다고 하는 게 이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듯 라쿠나가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의 기억뿐만 아니라 조엘의 어렸을 적 엄마가 클레멘타인 노래를 불러 준 기억까지 지워버렸기 때문이에요. 영화 초반부 장면들이 기억을 잃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는 것을 암시하는 요소이죠.

그린 레볼루션, 레드 메너스, 에이전트 오렌지, 블루 루인

영화를 보고 있으면 유독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이 눈에 띄어요. 영화 속에서 클레멘타인이 조엘에게 자신의 머리색에 붙은 이름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죠. 여러 시점이 교차하여 있는 특성상 장면마다 언제인지 헷갈릴 수 있는데요, 머리색에 집중해서 보신다면 눈치챌 수 있을 거예요. 머리색이 사랑의 온도에 따라 바뀌거든요. 처음 서로를 만나 사랑을 만들어 가는 시점에서의 머리는 초록색이에요. 색이름은 그린 레볼루션(Green Revolutin), 말 그대로 혁명과도 같이 운명적으로 피어난 사랑을 의미해요. 이후 서로를 뜨겁게 사랑할 때는 강렬한 빨강이죠. 이름은 레드 메너스(Red Manace)로 강렬하지만, 이 사랑이 그들의 삶에 어떤 위협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죠. 두 사람의 사랑이 끝나가고 메말라가는 때의 머리색은 오렌지색이에요. 이름은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enge). 이 이름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했던 고엽제의 이름으로 메마르고 황폐해지는 두 사람의 사랑을 뜻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별 후 기억을 지운 두 사람이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 동안의 머리색은 파란색이에요. 색이름은 블루 루인(Blue Ruin). 이별 후 기억을 지운 두 사람에게 남은 공허와 비어버려 폐허가 된 것을 상징하는 색이죠. 하지만,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잖아요. 만일 이 영화의 뒤를 잇는 장면이 있다면, 클레멘타인은 어떤 머리색을 하고있을까요?

*참고로, 클레멘타인 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은 계속 바뀌는 머리색을 위해 가발을 쓰고 연기했다고 하네요!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19295571#home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

영화 속에서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의 이름이었던 ‘라쿠나’. 라틴어로 ‘잃어버린 조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동명의 이름을 가진 밴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 아셨나요? 밴드 라쿠나는 한국의 밴드로 98년생 동갑내기 네 명으로 구성된 밴드라고 해요. 실제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영감을 받아 팀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곡 중에서 ‘Montauk’이라는 곡은 영화 속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만나는 곳이자 조엘이 충동적으로 떠나는 곳인, 영화 속에서 아주 중요한 지역인 ‘몬톡 Montauk’을 떠올리게 하죠. 이 노래 가사에 ‘나는 어제 필요 없는 생각들은 두고 왔어요.’라는 가사가 나오는데요, 마치 어제 기억을 지우고 충동적으로 몬톡으로 떠난 후 클레멘타인과 다시 사랑에 빠진 조엘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지 않나요?

8월의 크리스마스

메리캘린더에서 소개해드렸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시나요?

이 무더운 여름에 8월의 크리스마스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메리캘린더가 찾아가봤어요. 행사는 지난 5일 부산 북구 금곡동에서 진행되었는데요. 북구문화도시예비사업 북구다움 프로젝트가 주최하여 <메리크리스마스, 금곡>이라는 타이틀로 단순히 선물을 만들어 전달하기만 하는 행사가 아니라고 해요. 금곡동에 거주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나누며 손을 모아 동네를 꾸미는 행사였다고 하는데요, 동네 주민 모두가 마음을 열고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금곡동만의 동네 축제로 자리매김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5월부터 시작하여 금곡 주민 분들이 이야기를 모으고 아이들과 그림 작가가 함께 크리스마스 굿즈를 만들어 거리를 꾸몄다고 해요. 축제 당일에는 크리스마스 물총놀이,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 굿즈 만들기 체험, 크리스마스 공연으로 한여름을 크리스마스로 물들였어요. 이 행사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12월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해요! 찌는듯한 더위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니 조금은 더위가 잊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구독자님들에게도 8월의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전달되었길 바라며 메리캘린더는 뜨거운 여름에도 크리스마스와 함께 할게요.🎄❤️